[에세이] 가짜가 만들어내는 가치의 모습이 결국 진짜가 된다

우리는 종종 진짜와 가짜는 명확히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짜’로 시작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가 되고, 심지어 더 강력한 현실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가장 강력한 능력은 허구를 창조하고, 그것을 집단적으로 믿는 힘이다"라고 말한다. 즉, 어떤 개념이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던 허구일지라도, 그것을 믿는 사람이 많아지면 현실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돈, 국가, 브랜드, 종교, 심지어 개인의 정체성까지도 이러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돈: 가짜 신뢰가 만든 가장 강력한 가치
돈은 대표적인 예다. 물리적으로 돈은 단순한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종이가 ‘가치가 있다’고 믿고, 그것을 교환 수단으로 사용한다. 유발 하라리는 "돈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허구이다"라고 말하며, 돈이 오직 사회적 합의(social trust) 위에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금(금본위제)과 같이 실물 가치가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어야만 돈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실제 금이 없어도, 정부가 보증하는 "화폐 시스템"을 믿기 때문에 돈이 작동한다. 더 나아가, 이제는 실물 화폐조차 필요하지 않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도 처음에는 ‘가짜 돈’으로 취급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실제 거래에 사용하면서 하나의 ‘진짜’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돈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원래부터 진짜였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진짜’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브랜드: 가짜 신화가 만들어낸 진짜 가치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입는 옷, 사용하는 전자기기, 먹는 음식에는 본질적으로 ‘브랜드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나이키 운동화와 무명 브랜드 운동화의 제조 원가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이키 로고가 찍힌 운동화에 훨씬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왜일까? 그거은 바로 브랜드 스토리가 만들어낸 가치이다.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그 제품이 담고 있는 철학과 이미지, 그리고 소비자의 인식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낸다. 애플이 단순한 전자기기 회사가 아니라, "혁신과 디자인의 아이콘"이 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브랜드의 가치는 처음에는 마케팅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형성된 "가짜" 이미지였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고 소비하면서, 결국 그 가치는 현실이 되어버린다.
인간의 정체성: 스스로 만든 허구가 현실이 되다
개인의 정체성도 결국 "가짜"가 "진짜"가 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특정한 신념, 가치관,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정체성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처음에는 자신을 "리더십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노력과 경험을 통해 "나는 리더십이 있다"고 믿게 되면, 주변 사람들도 그를 그렇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결국, 처음에는 "가짜"였던 자기 인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가 된다.
이것은 자기충족적 예언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성공할 사람이라고 믿고 행동하면, 실제로 그에 걸맞은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다. 반대로,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면서 실제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우리의 정체성조차도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일 수 있으며, 그것을 반복해서 믿고 행동할 때 현실이 된다.
국가와 법: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큰 집단적 신뢰 시스템
국가와 법 또한 집단적 신뢰로 작동하는 가장 거대한 시스템이다. 우리가 사는 국가라는 개념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국가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유지되는 개념적 구조다.
유발 하라리는 국가와 법이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허구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법을 따르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논리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모두가 그 법을 따른다는 전제하에 사회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만약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법의 의미는 사라지고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즉, 법과 국가의 질서는 강압적인 힘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이 옳다고 믿고 따르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우리는 허구를 믿고 그것을 현실로 만든다. 국가, 법, 돈, 브랜드—이 모든 것이 집단적 신뢰의 산물이다."
우리는 종종 "가짜는 의미가 없다"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의 많은 것들은 처음에는 허구였고, 그것이 신뢰를 얻으며 진짜가 되었다. 돈, 브랜드, 국가, 법, 그리고 심지어 우리의 정체성까지도 집단적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개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짜가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믿는 것이 곧 현실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